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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hrayeogu · 2026-10-15 04:27
"제남(濟南) 사람 공옥대(公玉帶)227)가 황제(黃帝) 때의 <명당도(明堂圖)>를 올렸는데, 전이 하나에 벽은 없고 띠풀로 덮었으며 물이 궁궐의 담을 돌아가게 했다. 천 자가 이 설을 따랐다." 이것에 근거하면 그 유래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한 경제(景帝) 중원(中元) 2년(기원전 148년) 낙양에 명당·벽옹·영대를 지었는데 각자 다른 곳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명당에 도 담을 둘러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이우(李尤)228)의 <명당명(明堂銘)>에서 "넘실대며 물 흘러가 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벽옹을 반드시 두어야 합니다. 제왕이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옛 문헌을 따라야 합니다. 지금 명당을 지음에 반드시 예경(禮經)에 근 거해야 합니다. 모습과 제도는 주나라의 예법을 따르고, 척도는 <월령>에 의거해야 합니다. 빠진 곳은 다른 책을 참고해 계승하고 변화하는 이치로 갖추면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실과 9 개의 층계를 두시고,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나게 하십시오. 또 겹처마의 우진각지붕에 4개의 통 로와 2개의 작은 문을 두십시오. 이는 <고공기>와 <효경>에 의거해 말한 것입니다. 당의 둘레는 144척, 지붕 위의 둥근 도리는 길이가 216척, 태실은 가로세로 너비가 6장이고, 통천옥(通天屋)은 남북의 길이가 9장입니다. 또한 여덟 개의 작은 문과 스물여덟 개의 기둥을 둡니다. 당의 기초는 높 이가 3척이고 사방으로 향하며 오색입니다. 이는 ≪주서≫ <월령>에 의거해 말한 것입니다. "_수서 열전 우홍 편. 야마토의 전방후원분은 황제헌원 때의 명당의 제도를 따름인가?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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