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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과 패서 호족의 북방 민족(거란,여진 말갈)에 대한 인식 : 고려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할 때 "궁예는 사군(한사군=현토 낙랑 진번… · @mithrayeogu · TwKit

@mithrayeogu

왕건과 패서 호족의 북방 민족(거란,여진 말갈)에 대한 인식 : 고려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할 때 "궁예는 사군(한사군=현토 낙랑 진번 임둔)의 땅을 차지하고 감히 황제를 참람되이 칭하고 독자적으로 연호를 만들면서"라고 하면서 궁예의 자주적인 국가 운영을 많이 폄하함. 왕건은 초기엔 독자적 연호를 선포했으나 그후 후당에 조공하고 책봉받으면서 독자적 연호를 폐기함. 궁예가 거란에 보검 선물하고 거란이랑 긴밀히 연대 맺고 중국에 조공 사신 일절 보내지않은 행보하곤 완전히 다른 행보를 걸어감. 그럼 왕건에게 있어 '고구려'는 어떤 의미일까? 왕건이 후당에 조공하고 책봉 받을 때 후당 황제는 고구려가 현토군의 고구려현에서 출발했고 그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자조선에 닿는다는걸 강조하면서 왕건을 삼한의 대의 군사 겸 현토주 도독 겸 고려 왕으로 책봉함. 신라 왕은 계림주 도독 신라군왕일 뿐 삼한이나 현토 대방의 왕으로 책봉된 적은 없음. 삼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뜻하는거고 현토는 고구려를 뜻하고 대방은 부여 왕자 구태(=구이=고이왕)가 요동태수 공손씨의 사위의 위세로서 대방 땅에 백제 개국한 전승에 토대하여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 땅에 세운 군현으로 대방은 백제를 뜻하기도함. 근데 신라 왕은 계림주 도독 신라군왕으로만 책봉될 뿐 삼한이나 현토 대방의 왕으로 책봉된 적은 없는데 왕건이 삼한,현토 란 타이틀로 책봉받음. 아무리 국내에서 후고구려,고려를 칭하고 군사력을 강화시켜서 후백제와 쟁투를 벌여도 미묘한 군사 접경 요충지 아주 중요한 곳들을 함락 못시키면 지루한 장기전이 계속 반복되고 고착화될 우려가 있어서 견훤 왕건 둘 다 호족 포섭전에 전력을 가해야하는데 호족들은 스스로 성주 장군을 칭하고 저택을 짓고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치스럽고 강력한 놈들로 육지에 있는 놈들은 도적과도 같고 해변에 있는 놈들은 해적과도 같은데 건국한지 얼마 안된 궁예,견훤,왕건같은 소위 '도적의 무리들'이 그런 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으려면 경주 정권의 인정을 받거나,(왕건) 경주 정권의 인정을 받는 불교 대사들과 교류하거나,(견훤,왕건) 궁궐을 엄청나게 거대하게 세워서 위세를 드러내거나(궁예) 호족 승려는 탄압하고 학살하면서 그 탄압 학살을 지지해줄 친위 세력이나 호족이나 승려를 포섭하거나 (궁예) 중국의 후당이나 오월국과 긴밀히 교류해서 책봉을 받거나 (견훤,왕건) 엄청 좋은 도자기 기술자들을 하사받는거(오월국과 왕건의 관계) 그러나 왕건,견훤이 고구려나 백제 계승을 표방한건 단지 국호 사칭이 아닌 점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구려 언어 계열 지명들,백제 언어 계열 지명들을 신라 경덕왕인가? 중국 문화 숭상하면서 전부 중국식 지명으로 바꾸게했는데. 궁예 왕건,견훤이 각각 후고구려,후백제 건국하면서 만든 고을들의 관청들의 기와 와당들에서 고구려 언어 시절 지명,백제 언어 시절 지명이 확인됨.(고고학적으로) 후고구려는 마한-고구려 혼혈 종자들이. 후백제는 '변한'이란 정체성을 가지고있는 독특한 백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있던걸로 생각됨. 그러나 왕건이나 패서 호족들이나 그들에게 있어 '고구려'란건 단지, 현토군의 고구려현에서 출발한 중국의 속국 고구려(=고려)이지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고구려가 아님. 그래서 그런 자들에게 거란,여진은 그저 무식한 오랑캐들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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