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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971rh
한나라는 중원인의 정권이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 및 선비족과 한족이 혼합된 지배 엘리트층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들은 고구려를 상대로 대규모 침략을 감행했지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916년부터 1125년까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존재했다. 거란족이 고조선 부족들과 공동의 기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요나라는 고려를 직접 정복하거나 지배하지 않았다.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는 신라 및 고려와 자신들의 조상 계보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했으며, 외교적으로 고려를 존중했다. 1271년부터 1368년까지 몽골 제국이 세운 원나라는 고대 역사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원나라는 고려 출신 여성을 기황후로 책봉했으며, 고려를 직접 병합하려 하기보다는 황제의 사위 국가라는 높은 지위를 부여했다. 1368년부터 1644년까지 명나라는 동방 세력권에 속한 위씨와 고려 후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616년부터 1912년까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그 전신이 여진족이었다. 전성기에는 청나라의 국내총생산이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의 30~50%를 차지했다. 이처럼 막대한 경제력을 보유했음에도 청나라는 조선 왕조를 정복하거나 말살하려 하지 않았다. 청나라는 조선을 자신들의 조상과 기원이 비롯된 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외교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전도에서 공식적인 조공 관계와 형제국 관계를 확립했으며, 그 이후에는 다시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 반면 현대 중국 정부는 1949년에 수립된 화하 중심의 정권이다. 이 정권이 이 지역을 통치한 역사는 8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중국 대륙의 역사에서 극히 짧은 기간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지닌 세 가지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첫째, 역사가 짧은 화하 정권이 역사적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중국 정부가 중국 대륙을 통치한 기간은 8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세계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달하는 경제력을 보유했던 청나라조차 조선의 주권과 역사적 유산을 존중했다. 통치 역사가 한 세기도 되지 않는 정권이 현대의 경제적 지위만을 근거로 북두국, 고조선, 고구려를 포함한 수천 년의 동방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둘째, 언어와 문화적 유전자 사이에 뚜렷한 비양립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화하의 언어는 주어-동사-목적어(SVO) 어순을 따르는 반면, 한민족의 언어는 주어-목적어-동사(SOV) 어순을 따른다. 또한 온돌 난방 체계, 기마 전통, 옥기 양식, 백의 풍습과 같은 뚜렷한 문화적 특징들은 중원 지역의 전통과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고구려를 화하 역사의 일부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동북공정의 실상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의식적으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언어적·문화적 뿌리가 완전히 다른 홍산문화, 고조선, 고구려 문명을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화하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한민족의 역사적 유산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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