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세기 초반 '양'나라의 기록인 양직공도 백제국사제기에는 양나라에 조공을 온 백제 사신의 그림과 함께 백제의 역사에 대해 제법 짧지만 … · @mithrayeogu · Tw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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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세기 초반 '양'나라의 기록인 양직공도 백제국사제기에는 양나라에 조공을 온 백제 사신의 그림과 함께 백제의 역사에 대해 제법 짧지만 상세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기록의 첫 머리 부분에 백제의 대륙 진출에 관해 자세한걸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구절을 보면"진(晉)나라(서진) 말, 고구려가 요동을 약탈해 점유하자 낙랑 역시 요서를 점유하고 진평군 요서군 두 군현을 설치했다."라고 나옵니다. 이 때는 서기 3세기 말~서기 4세기 초반이고 만주 서쪽 요서 지방에 낙랑을 설치한 사람은 모용선비 선우 '모용외'이며, 같은 시기 고구려의 왕은 미천왕(을불)입니다. 미천왕은 진나라의 현토군을 파괴하고, 북한 평안도의 '낙랑군',북한 황해도의 '대방군'을 함락시킵니다. 이때 낙랑군,대방군은 진나라의 인구 조사가 멈춘 상황 즉 실제 진나라의 행정 통치가 미치지못하는 상황이었고 호족이 자칭 왕을 칭하고있었습니다.(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대방국(帶方國),고대 중국 기록 '진서(晉書)'의 지리지의 낙랑군 대방군 인구 관련 기록) 인구 수는 많았을 거 같습니다. 미천왕의 낙랑 대방 정복으로 인해 많은 낙랑 대방 사람들이 배를 타고 요서 지방으로 도주했습니다. 그 때 '모용외'는 이미 만주의 부여를 패망시키고 부여 사람 5만명을 잡아와서 요서에 이주시켜놓은 상태였습니다. 모용외는 요서 지방에 낙랑군,대방군을 설치하고 낙랑 대방 유민들을 정착시키지만 실질적인 낙랑,대방 경영은 부여인들에게 맡겼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모용외가 잡아온 부여 사람들은 모용선비와 혼혈되어 '요서 라마동 고분'을 세웠습니다. 요서 라마동 고분은 난징~한반도 한강 유역과 충청도의 마한~경상남도 김해 대성동 고분~일본열도 오사카 에 이르는 방대한 해양 교역을 하며 부를 축적했습니다. 요서 라마동 고분을 경영하는 부여 왕족은 모용선비 치하에서 '부여씨'라는 성씨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요서 라마동 스타일 골드 드래곤 벨트 버클 제작,금은 세공 기술과 말 조련술, 마구 제작 등 중요한 기술들을 독점하여 모용선비 안에서 세력을 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서 라마동 고분 집단은 한반도로 진출해서 한강 유역의 고이왕 계통의 백제 왕실을 대체하여 부여씨 왕실을 등장시키고(백제 근초고왕) 경상남도 김해로 진출하여 구야국 신지 계통을 대체하고 임나가라의 '이리(iri)' 씨 계통 왕조를 건국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서 멈추지않고 일본열도까지 진출하여 야마토 정권과 매우 긴밀한 교류를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김해 대성동 고분 고고학 출토 결과를 통해 드러난 파형동기 부착 나무 방패,통형동기 창 등을 통해 드러남.) 서기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은 중국 사마씨 난징 정권(동진)으로부터 '낙랑태수 겸 진동장군 겸 백제 왕'으로 책봉받습니다. 당시 중국이 주는 장군호 '진동장군'은 근초고왕이 거느린 낙랑 대방 계통 중국인들을 통솔하는데 매우 유리한 작용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낙랑태수'란 책봉은 단지 그냥 이름 뿐인 책봉이 아니라 요서 지역으로 이주해 설치되고 부여인들에 의해 경영되는 낙랑군에 대해 백제 근초고왕이 뭔가 유리한 이득을 얻어낼 수 있는 무역적 이득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서기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가 요서 지방의 모용선비 왕조 '후연(後燕)'을 공격해 모용씨 왕실이 몰락하고 고구려의 속국북연(北燕)으로 재탄생해 고구려에 복속되었습니다. 북연(北燕)은 처음엔 고구려 고씨 계통 왕이 다스리다가 암살당하고 풍씨(馮氏) 왕이 즉위합니다. 서기 5세기 전반 타브가치(탁발)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요서 지방으로 쳐들어오자 고구려 장수왕은 모용선비 왕실과 모용선비 백성을 몽땅 잡아다 요동으로 데려옵니다. 북위는 고구려를 피해 도망온 낙랑,대방 사람들을 데려와서 하북성 산해관~베이징 사이에 낙랑군 대방군을 옮겨 설치합니다. 서기 5세기 후반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는 1. 풍씨(馮氏)의 연나라 유민들이 고향 요서 지방을 그리워한다. 2. 낙랑,대방 유민들이 고향 요서 지방,요동 땅,낙랑 대방 고토를 그리워한다. 3. 북위의 승마 마구 세트가 백제와 거래되고있는걸 고구려 수군이 중간에서 격침시켜 백제까지 당도하지못했다. 라는걸 언급합니다. 그런데 북위 황제는 백제 개로왕이 보내온 북위의 승마 마구 세트를 받고서는 "이거 우리나라 물건 아닌데? 비슷하긴 한데. 비슷한거가지고 우리나라 물건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라는 답신을 보냅니다. 서기 5세기 말,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보내 백제의 경내를 침범했지만 백제군이 격파했다는 중국의 기록들...., 아마도 북위의 베이징,산동 쪽에 풍씨(馮氏)의 연나라 유민들낙랑,대방 유민들이 거주하며 승마 마구 세트를 제작해 백제와 밀거래하는걸 북위 당국이 포착하고 토벌하러오는걸 난징 정권의 장군인 백제 동성왕이 백제 장군들을 보내서 낙랑 대방 유민들을 도와서 북위 군사의 침공을 격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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