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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아시아 중국,한국,일본의 왕조 기록들은 기후 관찰,천문 관찰,제례 의식,반란,조공 입조가 주된 기록이고 지방 호족들이나 지역 사회가 … · @mithrayeogu · TwKit

@mithrayeogu

고대 동아시아 중국,한국,일본의 왕조 기록들은 기후 관찰,천문 관찰,제례 의식,반란,조공 입조가 주된 기록이고 지방 호족들이나 지역 사회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에 대해선 거의 관심없다 고고학을 통해 지방 호족들,지역 사회 그리고 각 나라들의 문물 교류 양상이 확인되지만 그것도 발굴된 유적 유물에 한해서만 확인되는 것이고 흐리고 뿌연 창문을 통해 매우 흐릿흐릿하게 보이는 세상과도 같다. 정사에 안 적혀있다고해서 그게 없다고 말하는건 매우 무책임한 소리다. 광개토태왕비가 없었으면 고구려 광개토는 그냥 뭐 적당히 잘 싸우다가 후연에게 개쳐맞아서 망할뻔했으나 겨우 구사일생한 흔하디 흔한 고구려 왕 B급 무장으로나 기억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편에 광개토가 서기 396년에 백제 58개 성 먹은 얘기 있나? 서기 396년에 백제 아신왕을 노객으로 삼은 얘기 있나? 서기 400년 5만 대군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고 야마토를 쫓아내고 임나가라 정벌한 얘기 있나? 서기 404년 야마토가 고구려 황해도 대방 땅까지 배 타고 쳐들어오자 그걸 역으로 쳐서 박살내서 야마토군의 시체로 뒤덮였다는 기록이 있나? 서기 407년에 후연을 거란이랑 함께 사방에서 포위 합전(合戰)하여 정벌한 기록이 있나? 숙신,동부여를 정벌한 기록이 있나? 없잖아. 중국 기록에도 광개토는 그냥 서기 396년에 고구려 왕 안(安=광개토)이 후연 모용보한테 조공해서 평주 사또 요동 대방 2국 왕으로 책봉되어 스스로 막부를 차려 장사,사마,참군관을 설치했다라고만 나올 뿐 그 외 다른 기록은 딱히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냥 후연 군주 모용성이 고구려 왕 안(安=광개토)이 후연 군주를 섬기는 예가 불성실하므로 신성,목저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돌아갔다는 기록 , 후연 군주 모용희가 요동성 거의 함락할뻔하다가 타이밍 놓쳐서 실패하고 퇴각했다는 기록, 후연 군주 모용희가 고구려 목저성 쳤다가 실패하고 거란 치려다가 실패하고 개뻘짓하다가 귀족 자제들 데리고 사냥 나가는 척 하다가 늑대들에게 마구 마구 물려서 꺄울!하고 도망치다가 황후 죽어서 흑흑하고 황후 관 수레 직접 끌다가 신하들한테 살해당했다 , 고구려가 연군(燕郡)을 쳐서 약탈했다 그냥 이렇게만 나올 뿐. 하북성,요녕성의 13개 군현 태수들이 고구려의 요동성의 성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하례 올리는 모습은 전혀 없음. (평안도 덕흥리 유주자사 진의 무덤 벽화 말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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