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에 보면 서기 346년경 부여는 본래 만주 송화강 벌판의 '사슴 산' 즉 '鹿山'에 중심지를 두고 있었는데. '백제(百濟)'에게 … · @mithrayeogu · Tw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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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에 보면 서기 346년경 부여는 본래 만주 송화강 벌판의 '사슴 산' 즉 '鹿山'에 중심지를 두고 있었는데. '백제(百濟)'에게 격파된 후로 모용선비의 연나라 가까이 중심지가 옮겨가있었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렇게 연나라 가까이에 옮겨왔는데도 부여는 방어를 위한 대비를 갖추지 않았다. 방어를 일부러 안 갖췄다기보다는 모용선비에 의해 방어를 갖추지 못하는 간섭의 상태 즉 사실상 요서 지방에 강제로 이사 당해 모용선비에게 간섭 당하고 기술 쪽쪽 빨려먹히는 호족 국가 상태의 위치에 처해있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이 때 모용선비의 연나라는 요서 조양시(=창려 극성)에 있었다. 서기 346년 모용황은 부여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부여 백성 5만명을 잡아끌고왔다. 부여 왕 현(玄)을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이미 요서에 이사 와있으면 잡아끌고올 이유는 없다. 아마도 당시 부여는 요서로 이사온 부여(西徙近燕 상태의 부여)와 아직 만주 송화강 벌판에 잔존해서 고구려의 부용국이 되어있는 부여(東부여)로 분단되어있었던 듯하다. 모용황은 그 마지막 남아있는 동부여마저 파괴해 함락한 듯하다.(이것이 광개토태왕비의 동부여와 동일한지는 모르겠다.) //자치통감 기록 (본문과 주석이 섞여있다.) //본문 [○ (永和二年(346)) 初, 夫餘居于鹿山, 爲百濟所侵,. 部落衰散, 西徙近燕, 而不設備. 燕王皝遣世子儁帥慕容軍·慕容恪·慕輿根三將軍·萬七千騎襲夫餘. 儁居中指授, 軍事皆以任恪, 遂拔夫餘, 虜其王玄及部落五萬餘口而還. 皝以玄爲鎭軍將軍, 妻以女. ]_ 資治通鑑 資治通鑑 卷九十七 晉紀十九 孝宗穆皇帝上之上 (永和二年(346)) 初, 夫餘居于鹿山,] 진서(晉書) 부여전 등의 기록을 보면, 서기 3세기 말, 모용선비 선우 모용외는 부여를 공격해 패망시키고 부여인 5만명을 잡아 끌고와서 쓸모없는 자들은 중국의 지방 호족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리고 쓸모있는 자들은 모용선비의 기술자로 삼은 듯 하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 편을 보면 부여는 말을 잘 기르고 금은 세공 기술이 뛰어났고 부여에서 나는 특산물을 가공하여 모자,의류를 잘 만들었다. 서기 3세기 말~서기 4세기 중반의 요서 라마동 고분은 모용선비와 부여의 혼혈 종자들의 세력 고분으로 추정된다. 라마동 고분은 승마 마구 세트,말 투구,북방식 투구,찰갑, 요서 라마동 골드 드래곤 벨트 버클(진식대금구(晉式帶金具) 등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된다. 이 유물 세트는 바다 건너 한반도 한강 유역과 충청도의 백제,경상남도 김해 대성동 바다 건너 일본열도 야마토 정권에까지 전파된다. 서기 3세기 후반 한반도 북한 평안도 황해도의 낙랑,대방군의 인구수 조사가 힘들어지고 호족들의 힘이 세져 대방의 유력자가 '대방국'을 세우고 마한 혹은 백제의 고이왕통의 왕인 책계왕과 혼인 동맹을 맺는다. 진나라 황제 무제 사마염은 낙랑 대방을 통해 만주,한반도의 여러 종족들과 교섭하거나 그들을 견제하기 힘드므로 낙랑 대방 대신 만주의 요동반도의 요녕성 요양시의 요동군 치소 양평현에 '동이 교위'를 두고 동이 교위로 하여금 만주,한반도의 여러 종족들을 상대하게 한다. 이 때 마한,마한의 침미다례(신미제국),진한,변한의 수십국이 동이교위와 무역하러 많이 왔다. 그러나 동이교위 선우영이 모용외의 부여 침략을 막지못한 것만 봐도 이미 동이교위의 힘은 유명무실했고 중국 본토에서의 증원이 올 때에만 그 때 그 때 강해질 수 있는 매우 불안한 마치 이빨이 흔들 흔들거리는 상황과도 같았고, 모용외는 동이교위를 알현하러 오는 마한인들 중 마한의 속국 백제 출신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부여를 격파하거나 부여인들을 납치하는데 사용한거같다. 이것이 자치통감의 부여가 본래 녹산에 있었는데 백제에게 침략당해 요서의 연나라 쪽 가까이로 옮겨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과정에서 백제는 자연스럽게 요서로 진출하고, 동이교위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고구려는 요동 지방을 약탈하고 점유하고있었던 것이라 보는게 맞다. 이 때가 서기 3세기 말이라고 보는게 적절하다. 서기 3세기 말부터 그런 혼란이 시작되어 서기 4세기 초반에 점점 과중되고 이것이 중국 본토에 영향을 주어 결국 기마민족들이 서진을 만만히 보고 침노하면서 서진이 멸망해 난징으로 도주한 것이다. 요동과 요서를 잃으니 요동의 철광을 잃어버리고 결국 기마민족들의 폭주족과도 같은 침노로 인해 중국 본토를 잃어버리고 난징으로 도주하는 것이다. 백제는 본래 마한 54국 중 하나의 소국이었다. 백제는 마한의 속국이었다. 온조 다루 기루 개루 초고 구수 사반 고이 책계 분서는 대방군과 인접한 마한의 신지들이거나 마한의 왕들로 백제와는 무관한 자들도 있을 것이고 백제 출신들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부여족 피가 섞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기 3세기 말 까지만 해도 목지국 신지나 '마한 왕'이나 '진왕'이 위나라,서진,동이교위와 교섭할 뿐, 백제의 군장이나 왕이나 '백제'란 존재가 그 교역의 중심 무대에 나타나지않았다. 백제 왕의 성씨와 이름 그리고 조공이 한번에 중국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최초는 진서(晉書)의 간문제기 서기 4세기 후반 기록에 백제 왕 '여구'가 난징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진동장군 령 낙랑태수 겸 백제 왕으로 제수되었다는 기사에서부터이다. '여구'의 '여'는 부여씨이고 '구'는 이름이다. 이외에 '여씨' 혹은 '부여씨'가 기록에 나타나는건 모용선비의 전연(前燕) 정권의 호족 '여울(餘蔚)'이 최초이다. 그 전엔 부여 왕은 의라,의려,현(玄)으로 나올 뿐, 중국식 성씨 부여씨를 쓴다는 언급은 없다. 모용선비에 의해 부여가 패망하고 부여인들이 잡아끌려와서 모용선비 치하의 호족으로 길러지면서 '부여씨'가 나타난 듯하다. “["백제는 오래전부터 야만족 마한(馬韓)에 속하였다. 진(晋)나라 말기에 구려(駒驪)는 요동(遼東)을 노략질해 점유하였고, 낙랑(樂浪)은 요서(遼西)와 진평(晋平)현을 가졌다. (백제는) 진나라 이후로는 항상 조공을 바쳤다. 의희(義熙) 연간에 그 왕 여전(餘腆=전지왕(腆支王))이 있었고, 송(宋)나라 원가(元嘉) 연간에 그 왕 여비(餘毗=비유왕(毗有王))가 있었으며, 제(齊)나라 영명(永明) 연간에 그 왕 여태(餘太=동성왕(東城王))가 있었다. 모두 중국의 관직을 받았다. 양(梁)나라 초기에 여태를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 삼았으나 곧 고구려에 패하였다. 보통(普通) 2년, 그 왕 여륭(餘隆=무령왕(武寧王))이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이르기를, '여러 번 고구려를 깨뜨렸다.'라고 하였다. 그가 다스리던 성을 고마(固麻)라 하였고, 읍(邑)을 ‘담로(檐魯)’라고 했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에 해당한다. 22개의 담로(檐魯)가 있는데 왕의 아들이나 동생 또는 왕족들에게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주변의 소국으로는 반파(叛波), 탁(卓), 다라(多羅), 전라(前羅), 사라(斯羅), 지미(止迷), 마연(麻連), 상사문(上巳文), 하침라(下枕羅) 등이 백제에 속하였다. 그들의 언어와 의복은 고구려와 거의 같았고, 두 팔을 벌리지 않고 걸었으며 절을 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다. 관모(冠帽)를 썻으며, 저고리를 복진, 바지는 곤이라 부르는데, 그 말 중에는 중국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진한의 풍속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自晋已來常修蕃貢 義熙中 其王餘腆 宋元嘉中其王餘毗 齊永明中其王餘太 皆受中國官爵 梁初以太 爲征東將軍 尋爲高句驪所破 普通二年 其王餘隆遣使奉表云 累破高麗 所治城曰固麻 謂邑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巳文 下枕羅 等附之 言語衣服略同高麗 行不張拱拜不申足 以帽爲冠 ?曰複袗 袴曰?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 _양직공도 백제국사(百濟國使) 제기(題記) "百濟國은 본래 高[句]驪와 더불어 遼東의 동쪽 1천여리 밖에 있었다. 그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遼西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晋平郡 晋平縣이라 한다."(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 _ 宋書 夷蠻列傳 百濟 "百濟는 그 시초가 東夷의 三韓國인데 [三韓國의] 하나는 馬韓이요, 다른 하나는 辰韓이요, 또 하나는 弁韓이었다. 弁韓과 辰韓은 각각 12國이 있었고 馬韓은 54國이 있었다. 大國은 1萬餘家, 小國은 數千家로서 모두 10餘萬戶가 되었는데, 百濟는 곧 그 중의 한 나라였다. 뒤에 점점 강대하여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합쳤다. 그 나라는 본래 [高]句驪와 더불어 遼東의 동쪽에 있었다. 晋나라 때에 이르러 [高]句驪가 이미 遼東을 경략하자, 百濟 역시 遼西·晋平 2郡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百濟郡을 설치하였다(百濟者, 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有五十四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百濟卽其一也. 後漸强大, 兼諸小國.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晉世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_양서 백제전 양직공도 백제국사제기,송서 백제전,양서 백제전,자치통감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서기 3세기 말~서기 4세기 초반 모용선비 선우 모용외가 마한 용병들을 활용해 부여를 공격해 패망시키고 부여인들을 잡아끌고와서 모용선비의 백성으로 만들고 고구려가 요동을 약탈 점유하면서 낙랑군,대방군을 점령하고 모용선비 선우 모용외가 낙랑군 대방군을 요서로 이사시키고 낙랑군 대방군의 무역 관리나 기술 제작을 부여족 집단에게 맡기고 마한과의 교역을 담당케하고, 평주 자사 최비가 모용외의 무역 독점에 열받아 우문부 단부 고구려와 연합해 모용외를 포위하지만 부여족 집단의 도움으로 모용외가 구사일생하고 이를 통해 부여족 집단은 모용외 치하에서 부여씨로서 어엿한 가문을 이루고 세력을 성장시키면서 요서군과 진(晉)나라의 평주(平州) 군현(=晉平郡=진평군 )의 지배자로 급부상하면서 모용씨는 눈에 보이는 임금. 부여씨는 실질적인 배후의 지배 세력이 되어서 해적 집단을 양성하여 바다를 건너게해서 한반도 한강 유역의 마한의 속국 백제(伯濟)를 쳐서 정복하고 백제 땅에 '백제군(百濟郡)'을 스스로 설치하고 (낙랑을 정복하면 낙랑군. 현토를 정복하면 현토군. 요서를 정복하면 요서군. 백제를 정복하면 백제군.) 부여씨 집단이 백제의 기존 고이왕 계통의 왕통을 대체하게하고 마한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게한게 아닌가 싶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책계왕 분서왕의 기년이 정확한진 모르겠으나 책계왕 분서왕의 기년을 서기 3세기 말~서기 4세기 초반으로 넓게 본다면, 책계왕은 중국 한나라 사람과 부여 계통 예맥족 연합 해적 혹은 도적의 공격을 당해 전사했고, 책계왕의 동생인 분서왕은 낙랑태수의 낙랑군 서쪽 현을 공격했는데. 서진의 태강 지리지를 보면 이미 서기 3세기 후반엔 낙랑군의 수성현은 마한인들의 약탈 침략을 피해 하북성 산해관 갈석산 쪽으로 피신해있던듯하다. 분서왕은 해적들을 보내 낙랑군의 서쪽 바다 건너로 도망간 고을인 수성현을 공격했는데 낙랑태수(모용외)가 이를 듣고 격분하여 오구나(=여구=야마토 타케루)를 보내 미인계 암살술로 분서왕을 암살하고 증원 해적들을 더 보내서 백제를 먹은듯 하다. 그러나 한강 유역 혹은 충청북도에는 '비류'라는 자가 있어 그 자는 성씨가 고이왕통 왕들과 마찬가지로 ‘우(優)’씨이고 세력이 제법 강해 마치 여포가 동탁의 양자가 되듯 부여씨인 여구도 비류의 양자가 되어야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비류가 이복동생과의 다툼으로 내분이 일어나 쇠락해가자 그 틈을 타 여구가 진(眞)씨 가문의 사위가 되어 백제의 왕좌에 앉은듯하다. 서기 346년은 삼국사기 백제본기로 보면 백제 왕 계(契 )가 죽고 최초의 부여씨 왕 근초고(346-375)가 왕으로 등극한 연도로 나온다. 시경詩經에서 은나라 시조 설契(=계契) 은 현왕玄王 이라 불린다. 서기 346년은 공교롭게도 모용선비가 부여를 패망시키고 부여 왕 현(玄)과 백성 5만명을 잡아끌고온 해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편을 보면 본래 백제는 문자로 나랏 일을 기록 안했는데. 근초고 때 낙랑 대방 계통으로 추정되는 박사 '고흥'을 얻어 최초로 나랏 일을 적기 시작했다고 적고있다. 그러면 백제 초기 왕들 온조,다루,기루,개루,초고,구수,사반,고이,책계,분서,비류,계 의 역사는 다 뭐란 말인가? 마한의 왕이나 군장들을 하나의 만세 일계처럼 묶는 조작의 과정이었던듯싶다. 그러면 '계'란 왕은 사실 부여 왕 현(玄)을 마치 한반도 한강 유역 백제에 살던 백제 왕인것처럼 둔갑시킨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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